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. 이진송 에세이 독서 讀書







학창시절 선생 중 하나는 자신의 뱃살은 인덕이라고 외치며 "나는 학생도 얼굴을 봐. 여학교잖아."라는 말을 아주 당당하게 했다.
당시 반에는 예쁜 아이가 있었는데 학기 초부터 "예쁘니까 너가 발표해 봐, 책 읽어 봐" 같은 말을 자주 했다. 그 친구는 그리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여서 이후에 발표나 질문은 잘 안 시켰는데, 이를 아쉬워하며 "(그 여자애 이름) 누구는 예쁘니까 괜찮지만, 나머지는 공부라도 잘해서 학교 간 뒤에 부모님한테 부탁해서 뭐라도 고쳐봐야지."라는 이야기도 대수롭지 않게 했다. ( 그리고 반 애들 얼굴을 한 번 훑고 한 숨 한 번 푹~ 쉬기 ) 어린데다가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 속에서 그것이 불쾌하다는 것을 또렷하게 느껴도 대처하지 못 하고 넘겼는데, 거기다가 그것에 대해서 불쾌감을 약간이라도 표하는 얼굴 같으면 '너희가 열등감이 있어서 그래'라며 하등하게 대하는 식의 말을 했다.

거기다가 이런 일들은 수 없이 많다. 동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었는데, 초등학생 즈음 되는 아이가 자꾸 옆에서 신발끈을 매길래 '빈 공간도 많은데 이녀석은 왜 내 옆에서 주저 앉는담?' 생각하며 옮겼는데 계속 따라왔다. 알고보니 그녀석, 내가 책을 찾으며 고개를 올리고 있는 순간들을 기다리며 치마를 입고 있던 내 맨다리 ( 혹은 속옷이 목적이었겠지 ) 를 신발 등에 핸드폰을 얹어 계속 찍고 있었다. 화장실 몰카는 들어봤어도 그 어린 녀석이 그렇게 대놓고 할 줄은 몰라서 당황했다. 바로 발등에 있던 핸드폰을 밟았어야 했는데, 나는 머리가 너무 벙쪄서 도서관 사서에게가서 ( 알바생이었던가 ) "어린애가 여자들 다리를 찍고 다닌다"고 이야기했다. 반응은 시큰둥 했고, 그 녀석은 눈치채고 도망갔지 뭐.

내가 선생님의 즐거움을 위해 10대부터 화장을 하고 다녔어야 했을까? 그 때부터 성형을 고민했어야 했을까? 
(실제로 대학 진학 이후로는 수 없이 많은 얼굴에 대한 자존감 하락과 성형의 유혹이 있었지. 아직도 코를 하고 싶기도 하니까 )
혹은 여자가 도서관에 가려면 치마를 입지 않았어야 했을까? 짧은 치마가 초등학생 아이에게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들었을까?
( 덧붙이자면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에 속바지도 입었다. 가족 중 누군가가 지긋지긋한 월남치마라고 했음 )






이 책은 아마 여성 독자라면 많이 공감하며 읽고 혹은 스스로도 모르고 있던 잠재된 편견을 인지하게 도와줄 수 있는 책이다.
그리고 남성 독자라면 ( 아마 거의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) 공감을 전혀 못하거나 혹은 까탈스러운 이야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.

한국에 살고 있는 여자로 겪는 특수한 상황과 모든 여성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보편적인 고민까지 두루두루 담아 책으로 엮어서 그런지, 이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. 거기다가 그 이야기를 영화, 책, 노래 등 여러 대중매체 콘텐츠와 함께 엮었다. 거기다가 마지막으로 이진송 작가의 필력이 마음에 들었는데, 아니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 책을 접할 기회가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으면서 <연애하지 않을 자유>를 안 읽은거지? 





여러모로 읽을수록 유익하고 재미있었던 책

특히 나는 '싹싹한 젊은이' & '착한 아가씨'라는 것에 굉장히 많은 압박감을 느끼곤 했다. 늘 친절하고 늘 싹싹해야하는, 비단 '여자'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? 같은 그런 것.
( 글로는 다 적지 못하겠지만 아까처럼 초등학생이 몰카를 찍었을 때도 '너무 황당하다'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처가 느렸으며, 남&녀의 상황이 아니라 동성의 경우 없는 누군가가 쌍욕을 할 때도 욕을 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. 우리집은 조부모님부터 시작해서 아무도 욕을 안 했거든 :( 이후에 나는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사용하기 위해 집에서 몰래 욕 트레이닝 &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했다. )
그래서 여러 황당한 경우에 바보같기 일쑤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보다 '자기 주장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'이 되기 위함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.

이진송 작가의 저자소개에 "재기발랄"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소개하기는 아쉽다.
뭐랄까 친언니, 동네 언니로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매력?
뚜렷한 주관과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필력을 두루갖추고 있다.




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<흑설공주 이야기>를 우연하게 읽으면서 ( 저자 : 바바라 G 워커 ) 처음 여성학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.
나름 여러가지로 알고 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,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이번 책을 통해서 한 번 더 배울 수 있었다.
그리고 더불어 말솜씨와 필력의 부재로 '불편하다'라고 추상적으로만 느꼈던 감정을 잘 정제된 작가의 필력으로 다시금 생각하고 만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.

살짝 아쉬운 건, 아무래도 여러 매체의 내용들과 엮다보니 내용이 트렌디하다. '현재의 우리'를 담고 있다.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중매체의 콘텐츠들도 몇 년 뒤의 독자들이 읽는다면 공감대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. 트렌디한 내용도 좋지만 조금 더 폭 넓게 이야기 했다면 더 오래 힘을 이끌고 갈 수 있었을 것 같아, 이 부분은 살짝 아쉬웠다.
( 혹은 몇 년 뒤에는 이 책에서 다룬 내용들이 '실례'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비슷한 주제의 내용들이 줄어든다면 더 좋고 )




좋았던 책.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.
연애하지 않을 자유도 읽어보아야지 :)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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